지식산업센터에 스며든 편법의 손길
지식산업센터는 비교적 저렴하게 투자할 수 있는 부동산 상품으로 인기가 좋았다. 투자해도 ‘주택 수’에 잡힐 염려가 없었으니 관련 시장은 빠르게 커졌다. 하지만 2022년을 기점으로 지식산업센터의 인기는 빠르게 식어갔다. 공급이 수요를 훌쩍 뛰어넘은 결과였다. 이 때문인지 최근 지식산업센터를 ‘주택처럼’ 홍보하는 곳들이 늘어났다. 편법이 깃든 지식산업센터는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
한강이 보이는 사무실. 어느 회사나 원할 것 같은 공간이지만 그런 사무실이 모두 주인을 찾는 건 아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은지구에서 건설 중인 지식산업센터들은 그중 하나다. 서울과 멀지 않고 조망까지 갖췄지만 공실이 적지 않다. 일부 주민은 “기업이 입주하지 않는데도 지식산업센터가 계속 만들어진다”며 “채워지지도 않는데 왜 자꾸 짓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래서인지 여기엔 ‘선착순 동호수 분양’이란 현수막이 붙어 있는 분양홍보관도 적지 않다. 공사가 진행 중인데도 미분양을 털어내지 못한 곳이다. 계약금·중도금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으면 공사비를 충당할 때 더 많은 돈을 빌려야 한다. 사업 부담이 커지는 거다. 여기에 주민들이 걱정하듯 공실 문제까지 겹치니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다.
지식산업센터의 공실이 갈수록 늘어나자 고양시가 움직였다. 2023년 7월 고양시는 ‘업종 제한’을 완화했다. 전문건설업이 들어갈 수 없었던 지식산업센터의 문턱을 낮췄다. 직접 상품을 제조·설치하는 전문건설업체를 위해 편의를 봐준 셈이었다.
효과는 없지 않았다. 고양시 관계자는 “2023년 업종 제한을 완화한 이후 입주기업이 늘어났다”며 “규제 완화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사례는 2023년 3월 완공한 ‘덕은 리버워크’다. 2023년 6월까지 총 740실의 사무실이 있는 ‘덕은 리버워크’에 입주를 계획한 기업은 610곳, 실제 입주한 기업은 499곳이었다. 약 1년이 흐른 2024년 5월에는 입주를 계획한 호실은 847호, 실제 입주 기업은 505개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갈 길은 아직 멀다. 2023년 완공한 지식산업센터는 3곳이었지만 2024년 8월 기준으론 7곳이다. 채워야 할 사무실이 더 늘어난 셈이다. 가능할까. 낙관하긴 힘들다. 지식산업센터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다.
무엇보다 지식산업센터의 매매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종합서비스기업인 알스퀘어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이후 가격이 꺾인 적 없는 지식산업센터는 2022년 3분기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탔다. 올 2분기 지식산업센터 매매가격지수는 200.1포인트로 전분기 대비 5.7% 떨어졌고 2023년 1분기보단 11.3% 하락했다.[※참고: 기준치 100포인트는 2011년 1분기 기준이다.]
거래 규모가 쪼그라들었다는 점도 나쁜 변수다. 2015년부터 매년 1조원 이상을 유지해온 지식산업센터의 거래 규모는 2021년 1조7000억원으로 최대치를 찍었지만, 2022년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상반기 거래 규모(7598억원·지식산업센터114)가 전년 같은 기간(7458억원)보다 소폭 늘긴 했지만 시장 활성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알스퀘어 측은 “올해 상반기 거래 규모가 증가한 건 사실이지만 가격 하락으로 매각 건수가 많아진 결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매매가는 떨어지고, 거래규모는 줄었는데, 공급 예정인 지식산업센터의 수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도에서만 신설을 승인받거나 분양공고를 허가받은 지식산업센터만 177개에 달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동성도 걱정거리다. 현재로선 지식산업센터 시장에 돈이 더 유입되기 어렵다. 올 3분기에도 지식산업센터 매매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고양시가 아닌 다른 경기도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2~3개월 만에 실거래가가 10% 이상 하락했다.
경기도 안양의 한 지식산업센터는 지난 8월 3.3㎡(약 1평·이하 같은 기준)당 836만원에 팔렸지만 2개월 후인 10월엔 13.9% 떨어진 720만원에 거래됐다. 경기 성남의 지식산업센터의 매매가는 7월 730만원에서 10월 626만원으로 떨어졌다. 3개월 만에 14.3% 빠진 셈이다. 경기 하남 미사의 지식산업센터도 지난 2월 718만원에 거래됐지만 7개월 후인 9월엔 18.9% 떨어진 582만원에 팔렸다.
이처럼 팔리지 않는 지식산업센터는 ‘불편한 후유증’을 남긴다. 공사비를 충당하지 못해 끝내 완공하지 못하고 흉물처럼 남아버리는 식이다. 판 값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완공하고도 임차인을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늘 ‘편법’을 부채질한다. 공장이나 업무시설로 써야 하는 지식산업센터를 주택처럼 사용하는 거다.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비슷한 사례가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 분양하는 지식산업센터 중엔 ‘라이브오피스’란 이름으로 주택처럼 홍보하는 곳도 있다. 이렇게 실제 용도를 편법적으로 바꾸면 정작 기업이 들어올 여지가 좁아진다. 침체기를 맞은 지식산업센터는 과연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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