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유지관리.. 출혈경쟁 심각
[대한경제=박흥순 기자] 승강기 유지관리 시장의 제살 깎기식 저가 수주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산정한 표준유지관리비는 1대당 월 20만원 수준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하는 8만~9만원, 심지어 2만원대 계약이 눈에 띄고 있는데, 승강기 유지관리업체들은 부품 교체로 부족한 단가를 메우고, 입주민은 영문도 모른 채 수리비 폭탄을 맞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승강기협회가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등록된 최근 4~5년치 유지관리 계약을 전수 분석한 결과, 평균 계약금액은 1대당 월 8만~9만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가는 2만1000원에 불과했다. 하루 1000원이 안 되는 돈으로 승강기 1대를 관리하는 셈이다.
앞서 공단은 입주자대표회의, 주택관리사협회 등 관계기관과 TF(태스크포스)를 꾸려 표준유지관리비를 대당 월 20만원 안팎으로 산정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에 머물다 보니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승강기 유지관리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진 것은 품셈 부재 탓이 크다. 건설공사와 달리 승강기 유지관리에는 표준화된 공용 품셈이 없다. 서울시가 만든 서울형 품셈도 설치 분야에 한정돼 유지관리에는 적용할 수 없다. 엔지니어링 노임단가를 기준으로 기술인력 2명이 1시간 점검하면 최소 5만원 이상이 든다. 월 계약금액이 점검 한 번 인건비에도 미치지 못 하는 계약이 버젓이 체결되고 있는 것이다.
저가 수주의 이면에는 실적 경쟁이 있다. 일부 업체가 유지관리 실적을 확보하려고 단가를 극단적으로 낮춰 계약을 따낸 뒤, 불필요한 부품 교체를 유도해 손실을 충당하는 식이다. 관리주체 입장에서는 싼값에 승강기 유지관리를 맡겼다가 예상치 못한 수리비를 떠안게 된다.
실적을 공인해주는 인증 제도가 없다는 점도 저가 낙찰을 부추기고 있다. 건설업은 관련 협회가 실적증명을 발급하지만, 승강기 유지관리업은 업체가 자체 작성한 포트폴리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실적과 품질을 따지는 적격심사가 어렵다보니 결국 최저가를 써낸 업체가 일감을 가져간다.
저가 계약은 안전 문제로 직결된다. 단가가 낮아질수록 기술인력 1명이 관리해야 하는 승강기 대수는 늘어나고, 점검 부실은 고장과 갇힘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후 승강기 문제는 당장 올 여름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승강기는 설치 후 15년이 지나면 정밀안전검사를 받아야 하고, 21년이 지나면 교체 대상이 된다. 주민 동의를 받으면 24년까지 미룰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을 안고 가야 한다.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교체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데, 교체 공사에는 보름에서 20일 가량 걸린다. 승강기가 1대뿐인 구축 아파트는 폭염 속에 발이 묶이는 셈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을 제때 쓰지 못해 교체 시기를 놓치고, 한 여름 갑자기 멈춰선 뒤에야 부랴부랴 공사에 나서는 일도 되풀이되고 있다.
갇힘 사고가 통계에 모두 잡히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승강기 사고는 행정처분 수위가 높아 영업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보니, 경미한 사고는 업체가 이용자와 합의해 조용히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사고율이 낮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승강기 유지관리비 현실화가 먼저 이뤄지고, 승강기 전용 표준 품셈이 마련돼야 저가 낙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며 “최저가가 아니라 실적과 품질이 좋은 업체가 선택받는 시장이 돼야 입주민 안전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흥순 기자 so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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